다 떠난 경리단길...‘맛집’ 39곳 중 6곳만 남았다
‘X리단길’ 시리즈의 원조이자 ‘서울시내 골목상권’의 대표주자였던 경리단길이 계속된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다. 국군재정관리단(구 육군중앙경리단)에서 힐튼호텔까지 이어지며 경리단길의 ‘메인로드’라 불렸던 ‘회나무로’에서도 공실 문제가 심각하고, 관공서와 공공기관에서 ‘관광명소’로 소개됐던 식당들은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임대료 인상탓에 기존 점포가 상권을 이탈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부상하는 다른 신흥상권에는 시사점을 준다.
경리단길은 이태원2동 ‘회나무로’의 골목상권을 지칭한다. 메인로드인 회나무로 초입부에 경리단이 위치해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지난 2012년 쉐프 장진우의 식당이 큰 인기를 끌면서, 경리단길 전체가 신흥 상권으로 떠올랐고, 2018년 무렵에는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상권이 됐다. 하지만 이에 따른 임대료 인상으로 경리단길 상권의 현재는 공실이 넘치는 참담한 수준이다.
위기의 경리단길, 맛집도 못견뎠다
16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기준으로 ‘용산구 세계음식지도’에 선정된 경리단길 식당 39곳 중 33곳은 더이상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다.
용산구는 지난 2016년 2월 홈페이지를 통해 용산구 소재 ‘세계 음식점’ 300곳을 소개했는데, 통칭 경리단길로 불리는 ‘회나무로(회나무로, 회나무로13길, 회나무로13가길, 회나무로25길, 회나무로42길 등)’ 식당은 39곳이 포함된 바 있다.
용산구는 지도 작성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식당 300곳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면서 “세계음식 지도 완성을 통해 용산이 세계의 중심 도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자찬했다. 관련 리플릿을 제작해 여행사와 지하철에 배포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4년 1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이들의 영업여부를 확인한 결과, 39곳 중 33곳은 폐점하고 현재 영업을 이어가는 경우는 6곳에 불과함이 확인됐다. 생존률은 12.9%에 불과했다. 한 식당 주인은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에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식당 영업을 중단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다른 관광안내도에 나온 가게들 중에서도 장소를 옮기거나, 폐업한 경우가 많았다. 서울관광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관광’ 홈페이지에 소개된 ‘한국술집 안씨막걸리’는 가게 위치를 본래 위치였던 회나무로 13가길인근에서 회나무로로 옮겼다. 건물주와 술집상인 간에 임대료 문제로 마찰이 커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서울관광 홈페이지에 소개됐던 수제맥주 판매점 ‘우리슈퍼’는 임대료 문제로 폐점한 상태다. 현재는 다른 점포가 우리슈퍼를 이어 같은 자리에서 수제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문제는 임대료... 치솟는 공실률
기존 점포들이 문을 닫거나 위치를 옮기게 된 데에는 상권의 ‘급부상’과 함께 치솟아버린 임대료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서울시 우리마을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른 지난 2019년 3분기 회나무로13길의 1층 점포 평균 임대료는 1평(3.3㎡)당 2015년도 1분기(9만9156원)에서 2018년도 2분기 23만5784원까지 치솟았다가 현재 14만8731원에 이르고 있다. 최고대비 8만7053원 떨어졌지만, 2015년 기준으론 4만9575원 올랐다. 50평 가게일 경우 약 248만원, 100평 가게일 경우 495만원이 오른 셈이다.
중소기업벤처부가 지난해 발간한 ‘소상공인 실태조사’에서 사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연간 2억3500만원(월 1958만원), 영업이익은 3400만원(월 283만원)이었다. 소상공인들의 월 영업이익에 비교했을 땐 터무니없는 인상폭이었다.
경리단길 골목 상인들과 전문가들도 임대료를 ‘경영 애로사항’으로 지적했다. 고명진 경리단길 상인회 회장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까지, 열댓명의 상인이 상인회 단체 카톡방에서 퇴장했다”면서 “경리단길이 휘청이는 것은 사람이 많이 몰린 뒤 천정부지로 치솟은 임대료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상혁 더케이컨설팅그룹 상업부동산센터장도 “경리단길은 높은 임대료 문제로 상인이 떠나고 이제 B급 상권으로 전락하는 분위기”라며 “특색있던 경라단 상권이 퇴색되는건 아쉬운 일”이라고 했다.
경리단길을 포함하는 이태원2동 지역에서 지난해 3분기 폐점한 외식업체 수는 29곳, 개업한 외식업체 수는 11곳이었다. 단순히 보면, 점포 29개가 나갔지만 그중 18곳이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도 4분기,이태원 지역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6.4%에 달했다. 4분기 집계가 이뤄졌던 서울 45개 상권중에서 이태원 지역의 공실률이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서울 평균은 8.0%였다.
기존 상권은 이탈, 건물주는 ‘시세차익’
임대료 인상 여파는 경리단길에 자리했던 기존 생활기반시설들의 이탈로도 이어졌다. 실거주민들의 기반 시설이 줄어들었고, 실제 집주인도 길을 빠져나갔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상가(상권)분석’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기준시점을 2015년으로 봤을 때 이태원2동에서 한식/백반/한정집 18곳(102→87곳), 일반의류점 12곳(18→6곳), 편의점 8곳(19→11곳)이 문을 닫았다. 그외 호프/맥주(28→20곳), 서점, 서적, 신문소매(2→0곳)점의 감소도 눈에 띠었다.
경리단길 메인로드인 ‘회나무로’, 장진우길로 알려진 ‘회나무로 13가길’에 등기된 집합건물과 건물 316곳 중 62곳은 2015~2019년 기간 주인이 바뀌었다. 2015년 14건, 2016년 8건, 2017년 11건, 2018년 12건, 2019년 17건으로 거래는 꾸준히 이뤄졌다. 최고(高)시세 차익을 올린 이태원동226-7번지 소재 3층 건물은 9년새 30억6000만원(2006년 24억원→2015년 54억6000만원)이 올랐다. 그 다음으로 시세차익이 컸던 경우는 7년새 28억원(2011년 52억원→2018년 80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이태원동 5-5번지 소재 3층 건물이었다.
경리단길에 등기된 부동산 상당수는 ‘외부인’ 소유였다. 위 316개 부동산 중 152곳의 소유주의 주소지는 다른 부동산이었다. 소유주 중 53명은 한남동과 이촌동, 이태원동을 포함한 용산구에 거주하고 있었다. 23명은 압구정동 등 강남구 거주자였다. 서초구(10명), 송파구(7명), 분당(7명) 거주자도 많았다.
‘원주민’들의 상당수도 동네를 등졌다. 서울시 동별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2015~2019)간 경리단길이 포함된 이태원 2동의 전출은 7973가구, 전입은 6692가구였다. 1281가구가 순감소한 것이다.
한편 경리단길에는 회나무로를 중심으로 회나무로13길, 회나무로13가길, 회나무로25길, 회나무로42길 등 작은 골목길이 경리단길에 포함된다. 경리단길 이후 신흥 골목상권에는 경리단길을 본따 ‘X리단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송리단길(송파구 방이동 일대), 객리단길(전주시 객사동)이 대표적이다.
김성우 기자